2008년 08월 21일
묘사가 인상 깊었던『이코(ICO)-안개의 성(미야베 미유키)』
08. 08. 21
휴, 지난 주에는 훈련이 있어서 신병 외박을 못 나가게 되었습니다 : 예정대로 글을 못 올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난 주에 읽은 책 한 권 리뷰를 올려봅니다.

게임 『이코(ぃこ)』는 SONY 에서 발표한 플레이 스테이션 용 롤플레잉 게임이다. 내가 이 게임을 접한 것은 고등학생이었을 때인데 당시 형이 하던 이 게임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화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본 것으로 기억한다 : 아, 엔딩을 보며 ‘아, 불쌍한 요르다’ 라고 탄식하며 눈물짓던 형의 모습도 떠오른다.
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군. 어쨌든 이번에 접하게 된 소설『이코(ICO)-안개의 성』(이하『이코』)은 『모방범』으로 유명한 일본인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게임을 기반으로 만든 환상 소설이다.
『이코』의 줄거리는 요즘 나오는 환상 문학들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다.
주인공 이코는 머리에 뿔을 달고 태어난 소년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제국’에는 뿔이 난 아이를 13살이 되었을 때 안개의 성에 제물로서 바치는 관습이 있다. 주인공 이코 역시 제물로서 안개의 성에 보내지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이코는 그를 사랑하는 어른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제물로 바쳐지게 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안개의 성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여왕과 싸워 그가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지켜야 할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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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래 동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권선징악(勸善懲惡)적 구조, 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해 낼 소년 영웅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소녀의 등장. 그런데 어째서 책 두께가 이리도 두껍단 말인가. 물론 Paper Book으로 한 손 안에 들어가는 Richard Dawkins의 『The God Delusion(만들어진 신)』이 전공서에 가까운 두께와 가격으로 팔리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출판계의 빌어먹을 고급 출판 문화도 소설의 분량을 늘리는데 한몫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제발 다른 곳에서 번역 실력에서 고급을 찾도록). 하지만 문제는 분명 다른 곳에 있다. 왜 이렇게 이야기가 진부하고 지루해 보이는 걸까.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내 취향이 바뀐 걸까.
원작에 충실한, 너무 충실한
혹시 내 취향이 바뀐 건지 하는 의구심에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 봤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루하다는 것에 동의를 보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게임을 직접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이 환상 소설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이 지루하게 느껴진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소설이 원작인 게임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녀의 눈동자가 이코를 바라보며 묻기라도 하듯, 이코의 눈동자. 이코의 마음 저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려는 것처럼 투명한 눈빛을 던진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 이마에, 볼에, 머리에, 그리고 눈에서 마치 맑은 물에 씻기는 것 같은 상쾌함, 시원함을 이코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녀는 결심한 듯 손을 내밀어 이코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 손바닥과 손바닥. 꽉 맞잡은 손과 손 사이에 거센 물결이 흘렀다. 깨끗하고 따뜻한. 그래, 이 온기는 뭔가를 닮았다. 토쿠사 마을 사냥꾼들을 기쁘게 해 주는 풍요로운 사냥을 약속하는 산 아래로 불어오는 남풍. 그리움과 기쁨과 안도를 포함한 부드러운 바람. 그게 한꺼번에 다가와 이코를 감쌌다. 그러자 시계視界가 변했다.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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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이 여전히 명품 게임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이 게임이 다른 롤플레잉 게임과 가지고 있는 차이 때문이다. 이 게임은 등장인물의 개성 혹은 다양성이라든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닌 단 두 명의 주인공과 시간이 정지한 안개의 성의 몽환적인 배경,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단순하면서 슬픈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게임의 소설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먼저, 단 두 명의 주인공으로 570 쪽 분량의 장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다음으로 시각적인 화면이 아닌 상상 속의 묘사를 통해 이야기가 전달되기 때문에 우리는 복잡한 안개의 성 구조를 잘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안개의 성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감명을 받아 이 소설을 쓰게 된 작가는 필요 이상으로 배경의 중요성을 강요한다. 그 결과 게임에서와 달리 플레이어(혹은 독자)는 주인공에, 이야기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묘사들이 전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묘사는 느낌이 매우 독특했고 심지어 감동을 주기도 했다. 비록 내가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묘사를 통해 마음의 떨림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고 알았다. 젤라즈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지.
신록과 꽃의 향기를 머금은 미풍이 감싸 안은 마을. 하루의 노동에 만조하고, 얇은 옷을 입고 침대에 눕는 봄날 밤. 따라 누워 주는 부모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옛날 이야기. 여름날의 먼지와, 햇빛에 탄 피부색. 가을밤의 보름달과 하늘 가득한 별. 새벽의 눈부심. 막 딴 과일의 맛. 그걸 깨무는 건강한 치아와 솟구치는 기쁨. 겨울 추위에 목을 움츠리며 올려다보는 불의 듬직함. 피 냄새가 진동하는 무기를 내려 놓고, 옷을 벗은 사냥꾼들의 피곤한 얼굴에 떠오르는 자랑스런 미소를 동경과 함께 올려다 보는 눈동자. 언제나 빛나고 있었다. 언제나 따뜻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얼굴, 얼굴, 얼굴. 살아 있었다. 어느 시대의 어느 제물의 아이도. 살아 있었다. 어느 시대의 어느 제물의 아이를 보냈던 사람들도. p.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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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하나
아, 참고로 게임 『이코(ぃこ)』 엔딩은 본인의 형이 접했던 슬픈 결말과 행복한 결말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도 수박 아이템 하나로 말이다. 엔딩 전까지 수박 아이템을 갖고 있다면 두 주인공이 성을 탈출한 뒤 나란히 앉아 수박을 먹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원피스는 수박이었던 거냐.
덧 둘
읽다 보니, 그리고 게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두 번째 달의 연주곡 중 하나인 「외눈박이 소녀의 이야기(Alice in Neverland 수록곡)」가 생각났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요르다의 매력에 빠져 보시길.
# by | 2008/08/21 23:39 | 장르 문학 읽기 | 트랙백 | 덧글(0)


